작성시기 : 2025년
시음기에 앞서 베트남 위즐 커피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헝촌은(cà phê hương chồn) 족제비 향 커피라는 뜻이기 때문에 가짜 위즐 커피, 촌은(cà phê chồn) 족제비 커피라는 뜻이기 때문에 진짜 위즐 커피라고 하는 분들이 계시긴 하지만 단어 하나로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족제비 똥에서 거둬들인 원두를 가공해서 만든 것을 진짜 위즐 커피라고 생각하겠지만 생물학적 발효 공정을 통해 만든 녀석들도 위즐 커피로 취급합니다. (베트남어로 촌, 영어로 위즐, 시벳이라고 써 놓고 팝니다.) 족제비의 소화기관을 통과한 진짜 위즐은 가격에 0이 하나씩 더 붙는 수준이고 물량도 적어서 마트나 면세점 같은데선 팔지도 않습니다. 일반 커피가 만원, 위즐을 표방하는 고급 원두 혹은 미생물 발효 원두가 10만 원(예 : 레전드 커피의 백만 동짜리 위즐)이라면 똥에서 파낸 찐위즐은 100만 원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가격 차이가 심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찐위즐이라 한들 족제비가 자유롭게 생활하면서 좋은 커피콩을 찾아 먹은 건지 푸아그라 만드는 것처럼 좁은 우리에 갇혀서 아무 커피콩이나 먹은 것인지는 모를 일이기 때문에 찐위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에서 위즐 커피를 구입할 땐 그냥 좋은 원두를 구입한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찻잎이든 원두든 가격대비 품질이 어느 정도 비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격 차이만큼의 만족도를 체감할지 못 할지는 개인에 따라 다릅니다. 이 점에 유의하며 즐거운 커피 쇼핑을 하시길 바랍니다.
Honee coffee
Hương chồn premium
베트남에서 사온 호니 커피의 헝촌 프리미엄 커피입니다. 진짜 족제비 똥에서 골라낸 원두로 만든 위즐 커피는 아니고 위즐 커피에 영감을 받은 고급 원두를 이용한 커피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등급은 Bronze, Silver, Gold 세 가지로 나뉘며 골드는 프리미엄급 원두를 이용한 커피라고 합니다. 가격은 200g에 7.5만 원? 정도 했습니다. 커피알못에겐 분에 넘치게 비싼 녀석이지만 전에 마셨던 라비타가 워낙 인상적이었고 커피 말곤 딱히 살만한 것도 없고 경험해 본 베트남 원두들이 가격대비 만족도가 정확히 비례하는 모습을 보여줬던지라 망설임 없이 구입했습니다.
봉투를 열면 고소하고 평범한 커피향이 올라옵니다. 돈 날렸다 싶어서 기분이 팍 상하려던 찰나 뭔가 상당히 이질적인(?) 향기로움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흔히들 Tea향이라고 부르는 상쾌하고 향기로운 향이 납니다. 과일과 꽃 같은 느낌이 약간 있고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커피 믹스에서 날법한 가루우유 같은 느낌의 부드럽고 밀키한 향이 있습니다. 커알못에겐 너무 복잡한 향입니다만 나쁘진 않습니다.
25g, 200ml, 베트남 드리퍼로(핀) 추출, 향이 좀 더 풍성해지긴 하지만 추출하기 전 향을 그대로 가져가는 편입니다. 베트남 커피에서 흔하게 나는 캐러멜, 초콜릿, 고소한 들깨같은 느낌 대신 과수원과 꽃다발 같은 느낌이 납니다. 다크 초콜릿 풍미가 있긴 하지만 초콜릿 자체라기 보단 과일이나 당절임 꽃잎을 다크 초콜릿으로 코팅한듯한 느낌에 더 가깝습니다. 마셔보면 산뜻하고 산미 있는 맛을 중심으로 약간의 달콤함과 고소함이 존재합니다. 산미 있는 커피를 싫어하긴 하지만 향이 괜찮고 단맛도 좀 있어서 마실만 했습니다. 다만 단맛이 있다곤 하지만 라비타처럼 단맛이 강하진 않고, 핀 추출이라 그런지 끝맛이 꽤나 씁쓸한 편입니다.
전체적으로 제일 크게 와닿는 이미지는 과수원과 꽃밭입니다. 과수원에서 일하다 꽃밭에서 다크 초콜릿에 밀크 커피 한잔 마시며 쉬는 분위기랄까요. 새콤달콤한 과일과 시트러스 계열의 과수에서 볼법한 흰꽃으로 시작해서 다크 초콜릿으로 얇게 코팅한 구운 너츠류의 고소함 + 연유에 분유를 넣은듯한 달콤하고 밀키하고 뽀송한 느낌을 즐긴뒤 입가심으로 과일 한 조각을 먹는 기분입니다.
20g, 300ml, 커피 메이커 + 종이 필터(드립 커피), 핀 추출보다 향이 좀 더 뒤얽힙니다. Tea향, 다크 초콜릿으로 코팅한 건자두 같은 향, 약간의 꽃향, 밀크 커피에서 날법한 부드럽고 밀키한 향 까진 무난한데 과수원 한편에 된장을(?!?!?!) 담은 장독대를 잔뜩 가져다 둔 듯한 기묘한 향이 조금 있습니다. 맛을 보니 핀 추출에 비해 달고 부드럽습니다. 핀 추출이 새콤한 시트러스계 과일이었다면 드립은 달콤새콤향긋한 사과나 자두 같은 느낌입니다. 구수함도 좀 더 느껴지고 쓴맛이 나지 않아서 훨씬 마시기 편합니다. 커피가 과일맛이라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은 분위기가 나는 녀석입니다.
기묘한 된장 냄새만 뺀다면 과수원 커피라고 불러도 될법한 녀석입니다. 된장 냄새도 처음에만 좀 나고 나중엔 다른 향에 압도돼서 잘 안 느껴지긴 합니다. 라비타는 달기만 하던데 얘는 달콤새콤한데다 향미도 훨씬 복잡해서 마시는 재미가 훨씬 더 좋습니다.
괜찮은 경험이었습니다. 가격대비 만족도가 비례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정비례는 아니고 로그함수 그래프 마냥 비례합니다. 커피 자체는 좋았지만 홍차 처돌이 입장에선 이 금액이면 원두보단 시즌 다즐링이 더 눈에 밟히는 게 현실입니다. 한국의 커피 시장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이라 이 정도 수준의 원두는 국내에서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입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추천할만한 제품인진 모르겠습니다. (커피를 거의 안 마시기에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비슷한 느낌의 원두와 비교했을때 가성비가 좋은지 나쁜지 전혀 모릅니다.)